일상: 내가 사는 작은 이탈리아 마을 105

일기

소생 요즈음 얼마나 멍청하게 살고 있느냐면, 저번 주말에는 근처 동굴에 놀러간다고 신나하다가 알고보니 조금 더 먼 곳에 좀 더 나은 동굴이 있어서 행선지를 급회하여 그 곳에 당도하니 관광지와 어울리지 않는 적막함이 감돌아 알아보니 15분 전에 마지막 입장이 마감되었다. 원통한 나머지 분노의 질주로 원래 가려던 집 근처 동굴에 도착하니 이 역시 괴이한 고요함이 느껴져 입구에 가보니 15분 전에 마지마막 입장이 마감되었다고 적혀있었다... 이렇게 나의 금쪽같은 일요일이 깡그리 공중분해되고. 어제는 동네를 지나다 빵가게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우연히 보았는데 incognito 콘서트 라고 씌여 있었다. 바쁜 일이 있어서 자세한 내용을 읽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바깥냥반에게 인코그니토가 세상에 우리 동네에서 콘서트..

이탈리아에서 실수 / Basta 와 A posto / 이탈리아에 사는 다람

실수라고 하기에는 소소한 사건의 전말. 오늘은 프로슈또를 사러 슈퍼에 갔다. 우리나라는 마트나 슈퍼에 가면 정육점 코너가 따로 있지만, 이탈리아에는 프로슈또나 햄 종류를 파는 코너가 따로 있다. 여기서 내가 좋아하는 햄을 고르고 몇 그람을 달라는 식으로 말하면 즉석에서 잘라준다. 그만큼 프로슈또나 햄의 소비가 많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나라는 햄이 몹쓸 정크푸드로 각인되어 있지만, 이탈리아의 프로슈또나 햄은 다르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엄선된 돼지고기를 건강한 방법으로 만들어서 믿고 먹을만 하다. 한국에서 이름은 햄이라고 같지만, 비엔나 소세지나, 스팸에 비교 불가한 이탈리아의 햄. 종류도 얼마나 많은지 아마 죽기 전에 그 모든 종류를 다 먹지 못하고 죽을 가망성이 크다. 각설하고, 산다니엘레 프로슈또 크루..

이탈리아에서 본 무지개? / 이탈리아에 사는 다람

일출도 일몰도 아닌 무지개가 사라지는 모습이다. 여기서는 꽤 자주 무지개를 본다. 오늘도 무지개가 나타났다는데, 나는 사라질 즈음 외출해서 무지개의 꽁지만 잠깐 봤다. 몇 년 전에는 쌍무지개도 봤다! 쌍무지개는 한국에서도 한번 본 적이 있다. 이태원에서 한 15년 전 쯤 전에? 그때도 4시 경이었던 것 같다. 쌍무지개를 보면 운수대통한다는 말이 있었데, 내 경우엔 두 번 모두 글쎄... 무슨 멋진 일이 일어났을까. 기억에 없다. 쌍무지개를 보고 잠시 신이 났었던 기억 뿐? 사실은, 그제 바깥냥반이랑 근처 동굴에 가기로 했다가, 찾아보니 조금만 더 멀리가면 더 큰 동굴이 있어서 행선지를 급회했다. 한 시간 정도 차를 타고 어후 3 시 15분 쯤 목적지에 도착하니 이상하게도 관광지 치고 썰렁한 것이 불길한 ..

이탈리아 일상 / 이탈리아에 사는 다람

어제는 집 정리 좀 하다 아는 언니 바에 가서 스프리츠 한 잔 마시고 오늘은 산책 겸 점심 먹으러 돌아다니다가 장 보고 다시 집 정리 모드. 갑자기 바람이 불고 다시 추워지니까 만사가 귀찮다. 오랫동은 비운 집을 청소하다 보니 와... 세상에 버릴게 이렇게 많았다니! 싶다. 이 집에서 전혀 존재의 이유를 찾아 볼 수 없는, 로마에서 사온 1유로짜리 중국산 플라스틱 콜로세움 기념품보다도 백배는 더 쓸모 없는 쓰레기들을 내 주머니에서 거금을 꺼내주고 산 것도 모자라 무엇보다 저런 것들에게 그렇지 않아도 좁은 이 집의 소중한 공간을 내어주고 몇 년간이나 모시고 살았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여기 살았던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동일인물인가 의심이 들 정도이다. 쓰잘데기 없는 쓰레기에 압도당한 하루.

이탈리아의 해질녘 골목 / 이탈리아에 사는 다람

해질녘 골목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쓸쓸하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하다. 쓸쓸한 이유는 해가 지고 어둠이 올 것이고 몸을 조금 움츠려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짝이던 하루가 이제 곧 막을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따뜻한 이유는 기억 때문이다. 어릴 적 친구들과 신나게 골목을 휘젓고 놀다보면 어느새 당연하게도 해질녘이 내려오고 여기 저기에서 밥하는 냄새와 김치찌게, 계란 후라이 냄새가 흘러나왔다. 아이들은 하나 둘 친구들에게 우렁찬 작별 인사를 하고, 엄마 품으로 자석처럼 달려갔다. 그런 기억. 오늘은 이탈리아의 화려한 해질녘 골목은 보이지 않고 수십년 전 한국의 아이들과 강아지가 달리던 골목이 보인다.

[나의 이탈리아 방랑기 1] 짐을 꾸리며

[나의 이탈리아 방랑기] 1 짐을 꾸리며 다시 짐을 정리해 봅니다. 모두가 이탈리아로 함께 갈 수는 없습니다. 두고 갈 것과 가지고 갈 것들. 그동안 손에 익었던 오디오를 상자에 넣었다 다시 풀어 놓습니다. 앞 몇 장만 읽었던 책을 들었다 놓았다 반복하다 끝내 상자에 다시 넣습니다. 이사짐을 싸는 것은 전혀 힘들지 않지만 가지고 갈 것과 두고 갈 것, 그리고 버릴 것을 정하는 일은 상당한 에너지를 소비합니다. 짐을 정리하고, 감정을 정리하고, 마음을 정리하고, 다시 떠납니다. 다른 계절이 시작될 것입니다.

1.8 인정

(이탈리아, 봄날 우리 동네 앞 바닷가에 정착한 크고 작은 요트들) 주변인들에게 인정받거나 무시당하는 일은사회적 동물, 우리에게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다.이 인정과 무시의 기준은 유연하여사회적 풍토나 집단의 수준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이것은 세뇌되거나 조작될 수 있다. 예를 들어소위말하는 북유럽 선진국 vs 우리나라, 강북 아줌마 모임 vs 제주도 유기견 봉사 모임, 유기농 텃밭 모임 vs 시가 모임,기준은 그 집단의 특성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나라에서는 돈과 외모가 전부라는 기준이 갈수록 확고해 지는 것 같다.이 저질스러운 기준은 암암리에 교육되다 이젠 사람들 스스로 자의적으로 좇고 있다고까지 생각되는데,이것이야말로 본인들을 현대판 상노예로 굳힌다는 사실을 가끔 인지라도 했으면 좋겠다.왜냐하면 정말..

2.4 한국으로 돌아갈까

(2011년 가을, 달이 해처럼 밝던 날 이탈리아 내가 사는 동네의 언덕에서 바라본 바다 건너편 도시)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언덕의 꼭대기 오래된 성당, 산타마리아 앞에 잠시 차를 세웠다. 번화가가 아닌지라 그렇지 않아도 사람이 북적거리지 않는 곳인데, 일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더욱 인적이 드물게 느껴졌다. 출구 쪽 길에는 트럭 한 대가 세워져 있고, 청년인지 아저씨인지 모를 건장한 남성이 차에 기대 아드리아해 너머를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차에서 내릴까 말까 잠시 망설이다가 반대편에서 큰 강아지 한 마리와 산책 나온 커플을 보고는 차에서 내렸다.방금 켜진 듯한 가로등 몇 개가 성당 주변을 비추고 있었다. 주황색 벽돌로 지어진 소박하고 오래된 성당 바로 옆엔 작은 치미테로가 있고, 주변..

(2011년, 이탈리아 내가 사는 동네의 한 성곽. 이 작은 성 안에는 아직도 관리자가 살고 있다. 이탈리아의 많은 성이 입장료를 받거나 또는 무료로 개방하는 곳이 많은데, 이 성은 한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다)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촘촘히 쌓아 올려진 성곽의 돌들만큼이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 너머에는 분명 무언가가 있는데,,, 애써 외면하고 사는게 속 편하다고 어른들은 말하지만, 해질녘이면 그 벽 너머에 사는 사람들의 경박하지 않은 여유있는 웃음 소리가 새어 나오고질 좋은 고기에 향신료를 넣고 오랜 시간 끓인 것 같은 맛있는 음식 냄새가 은은하게 흘러들어왔다.차분하면서도 흥겨운 음악소리가 희미하게 귓가를 울린다. 성곽 안의 사람들은 바깥 사람들을 미워하지도 싫어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