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내가 사는 작은 이탈리아 마을

0.5

이탈리아 다람 2015. 11. 30.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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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용기 내어 편입을 하고,

누군가는 꿈을 찾아 직업을 바꾸고,

누군가는 과감한 투자를 하고,

누군가는 계산하지 않고 먼저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망설였다. 나의 생각과 느낌에 믿음이 없었다.

머릿속은 언제나 오만가지 자료와 생각과 고민들로 가득 차 있었지만,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 나는 나를 믿지 못하고, 

불평 불만을 늘어놓으며 다리를 꼬고 젠체하면서 결정에 따른 책임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가하는 방법으로 근근이 버텨나갔다.

서른이 넘으니 머릿속에서 완전 소화되지 못하고 쌓인 끈적하고 기분 나쁜 망설임의 잔여물들이 포화 상태가 되었다.

그것들은 여러 형태의 이상행동들로 분출되었다.


직장을 그만 두었다.

아침마다 양재역 전철역에서 찬바람을 가르며 나와 함께 뛰어 가는 사람들. 고작 2 분 먼저 출발하는 전철에 몸을 구겨넣고

우리는 잠깐의 안도와 행복을 느꼈다. 고속터미널에서 우리는 전력질주로 전철을 박차고 나가 바퀴벌레 무리처럼 뿔뿔이 흩어졌다.


카메라를 샀다.

통장에 남아 있는 알량한 잔액을 어떻게든 오래 쥐고 있어야한다는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그 돈을 조금 더 쥐고 있는다고 내가 호의회식 할 것도 아니고, 그 돈을 당장 쓰고 싶은 것에 쓴다고 길가에 나앉는 것도 아니었다.


다른 언어들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내가 진정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직장을 그만 둔 후에도 알 수 없었다. 아니, 더욱 알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을 심각하게 해보려고 자세를 잡으면, 스물스물 머릿속 훼방꾼들이 나타나 "밥벌이는 되는거지?", "이번 달 건보료는 낼 수 있겠지?", "확실한 노후 플랜이 가능한 일이지?" 라고 물어댔다. 드디어 나는 입을 열었다.

"이거봐들, 지금까지 언제나 가장 안정된 선택을 했어. 근데, 지금의 내 꼴을 봐. 누구보다 불안정한 사람이 되버잖아?"


바르셀로나로 내 인생의 가장 긴 여행을 떠났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믿는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감소하나마 나는 엄마에게 물려받은 긍정의 힘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은 내 인생 최대의 일탈이었다. 

구석에 몰린 쥐처럼 나는 힘을 내었다.






(12월 해 질 녘 바르셀로나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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