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칼럼2011.06.13 10:57
[매거진 esc] 박찬일의 ‘시칠리아 태양의 요리’

이탈리아 토종 레스토랑 평가서의 좁아지는 입지, 
주세페와 싸우던 부주방장 페페의 맵시나던 디저트

부주방장 페페는 제법 디저트도 잘 만드는 ‘선수’였다. 어린 나이였지만, 못하는 요리가 없었다. 유수의 요리대회에서 일등상도 곧잘 받았다. 특히 디저트에 감각이 뛰어났다. 녀석이 대마초만 너무 피우지 않았어도 지금쯤 <감베로 로소>에서 평가하는 최고 식당의 수석 셰프 자리는 떼논 당상이라고 주방장 주세페가 한탄하는 걸 보면 장래가 유망했던 모양이다. <감베로 로소>(‘붉은 새우’라는 뜻의 이탈리아 레스토랑 안내서)는 말하자면, 이탈리아의 <미슐랭 가이드>였다. 이탈리아판 <미슐랭 가이드>도 나오지만, 요리사들은 은근히 ‘토종’ 식당평가서인 <감베로 로소>를 더 쳐줬다. 그렇지만 <미슐랭 가이드>의 국제적 명성이 이탈리아의 장화처럼 기다란 반도를 점령해 들어가고 있다.

‘접시는 캔버스가 아니야!’

주세페는 <미슐랭 가이드> 얘기가 나오면 코웃음을 쳤다. 아, 물론 반쯤 벗겨진 이마에 잔뜩 주름을 잡고 얼굴은 토마토처럼 상기되어서 말이다. “맘마미아! <미슐랭 가이드>는 온통 실내장식이 비싸든지, 아니면 다빈치의 그림이라도 걸려 있어야 별을 준다고. 게다가 그 웃기는 리스트 좀 봐. 온통 호텔 식당들이잖아. 바보 같은 미국 부자들이나 들락거리는 호텔 말야.” 물론 진짜 다빈치의 그림이 걸릴 리는 만무했다. 그야말로 주세페식으로 보면, 음식보다 치장에 더 신경 쓰는 식당을 비꼬는 중이었다. 주세페는 이탈리아의 식당이야말로, 산골이나 해안가 구석에 있어서 펄펄 뛰는 생선이나 갓 캔 버섯 따위로 요리해야 진짜라고 믿는 남자였다. 그런 그가 허세 강한 호텔 식당에 높은 점수를 주는 <미슐랭 가이드>를 비웃는 건 당연했다. 실제로 이탈리아 식당 평가서는 시골의 전통적인 식당에 높은 점수를 주고, 도시의 ‘되바라진’ 식당엔 짜게 굴었다. 그는 세련된 호텔 식당의 그 멋들어진 프레젠테이션(접시에 예쁘게 담는 기술)을 아주 심하게 씹어댔다.

“내가 그 식당 주방에 안 들어가 본 줄 알아? 온통 장식과 소스, 소스, 소스 ….(그는 이 대목에서 살짝 치를 떨었다.) 그게 무슨 이탈리아 식당이야? 프렌치 흉내나 내는 한심한 작태지. 그 소스와 장식물을 언제 만들었는지 기억들도 못할 거라고. 상해서 냄새 날 때까지 써댈 거야.”(그런 주세페가 장식용 가니시로 쓸 대파튀김을 일주일이고 이주일이고 주야장천 쓰는 건 괜찮은 걸까?)


» 주세페 주방장이 자신의 식당 부엌에서 요리 촬영을 하고 있다. 박찬일 제공
그는 아무 뜻 없이 음식에 마구 소스를 치는 걸 아주 싫어했다. 소스는 프랑스 것이지, 이탈리아와는 별 상관없다고 주장했다. 재료에 자신이 없으면 소스로 카무플라주(위장)하는 거라고 핏대를 세웠다. 요리보다 소스가 더 많이 나오는 미국 요리를 보면 그는 문자 그대로 헛구역질을 했다. 그러면서 ‘접시는 캔버스가 아니야!’라고 외쳤다. 접시는 요리를 담아야지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런 그를 최대한 모욕하는 건 ‘두 가지 소스가 뿌려진’ 운운하는 요리였다. 하나도 아니고 두 개라니! 요리가 주인공이냐 소스가 주인공이냐, 주세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나 밀라노 같은 도시의 멋쟁이 식당에서는 이미 이런 요리가 등장한다는 걸 그는 몰랐다. 식후에 내는 작은 과자를 이탈리아식으로 피콜라 파스티체리아라고 부르지 않고 ‘프티 푸르’(petit four)라고 명명하는 것도 밀라노 스타일이었다. 심지어 식당 이름도 그럴듯하게 프랑스어로 짓는 게 그 동네의 유행이었다.

주세페가 알면 이탈리아의 영혼을 팔아먹는 나쁜 놈들이라고 성토하고도 남았을 거다. 마치 1970년대에 로마의 스페인 계단 앞에 문을 연 맥도널드 앞에서 시위하던 이탈리아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 시위대는 나중에 유명한 슬로푸드협회를 창립하고, 세계적인 운동단체가 됐다. 재미있는 건 주세페 역시 이 단체의 아주 중요한 회원이라는 사실이다. 그의 말로는 슬로푸드협회 회장인 좌파운동가 카를로 페트리니가 자기 친구란다. 그가 툭하면 슬로푸드 회의나 행사가 벌어지는 토리노에 다녀오는 걸 봐도 틀림없었다.

뭐, 이렇게 주세페가 흥분하면서 마치 그 옛날 스페인 계단 앞 시위대로 환생하는 순간에는 그저 고개를 주억거려 주어야 한다. 눈치 없는 페페처럼 하다간 그저 지청구를 먹게 된다. “아니, 주방장님(물론 이탈리아에서 이런 호칭은 없다. 그저 ‘주세페’라고 부를 뿐), 접시를 예쁘게 담는 게 뭐가 나빠요? 그런 솜씨가 먹히는 게 요즘 밀라노고 로마란 말입니다. 매일 토속요리만 하다가는 손님도 오지 않을 거예요.”

<감베로 로소>의 포크가 <미슐랭 가이드>의 별에 밀리네

주세페는 신발을 벗어 내동댕이치며 소리를 질렀다. 아예 주방복의 첫 번째 단추를 끄른 상태였다. 너, 한판 해보자는 거야? 울화가 치밀어 목울대가 불끈했다. “너나 평생 접시에 그림이나 그리고 살아라, 이놈아. 케 피투라!(Che Pitura 뭔 놈의 그림이냐!)”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나는 주방 도우미 루치아 아줌마랑 슬슬 눈치를 보며 담배나 나누어 피우다가 실없이 파 따위를 다듬어야 했다.

이탈리아도 프랑스처럼(이젠 도쿄까지도!) 식당들이 권위 있는 평가서의 점수에 목을 맨다. <미슐랭 가이드>는 대표적인 외국계 평가서였고, 이탈리아 토종으로는 수많은 매체가 춘추전국시대를 이루는 가운데 <감베로 로소>가 가장 앞서간다.


» 감베로 로소 2009년판
여기에서 조금 헷갈리는 일이 생긴다. 토종인 <감베로 로소>는 최고 등급이 포크 세 개다. 반면, <미슐랭 가이드>는 별이다. 특히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다음 등급은 포크다. 헷갈리기 딱 좋다. 어느 식당이 포크 세 개라고 할 때는 <감베로 로소> 기준으로는 최고지만, <미슐랭 가이드>로 보면 별을 받기엔 모자란, 괜찮은 식당 정도다. 이런 체계도 주세페는 못마땅해했다. 이탈리아 최고의 식당이 포크 세 개를 받아 봤자 <미슐랭 가이드> 기준으로는 삼류 식당밖에 안 된다는 얘기잖아.

어쨌든 <미슐랭 가이드>에서 포크의 의미는 별은 아니지만, 그래도 소개해도 될 만큼 상당히 수준 높은 음식을 한다는 표시였다. 결코 삼류를 뜻하지는 않았다. 포크가 하나라도 붙으면 서비스나 와인 리스트, 인테리어 디자인은 별로지만 맛 하나는 보증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식당이란 결국 맛이 가장 중요한 것이니까.

<미슐랭 가이드>는 주세페의 식당에 포크 하나나 겨우 줄까 말까였다. 게다가 언제 다녀갔는지, 하도 오래된 까닭에 가격 업데이트도 안 되어 있었다. 이래저래 주세페의 불만을 살 만한 일이었던 거다. 농담이지만, <미슐랭 가이드> 취재팀이 주방 바깥 뜰의 제왕인 거대한 쥐를 안 본 건 천만다행이었다. 아, 물론 봤어도 그 거대하고 퉁퉁한 쥐를 털이 검은색인 친칠라 토끼로 착각했겠지만서도…. 그 토끼, 아니 쥐는 내가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도망가지도 않고 까만 눈동자를 굴리며 빤히 쳐다보았다. 내가 발을 구르며 겁을 줘도 슬쩍 피하는 척만 할 뿐 도망가지도 않았다. 아니 이 녀석도 막내 견습생을 우습게 보는군, 쳇.

<미슐랭 가이드>가 시칠리아 깡촌 식당에 공을 들일 리 없었던 것 같다. <미슐랭 가이드>가 오는지 마는지도 모르는 판국에도 <감베로 로소>나 이탈리아 토종 평가서는 우리의 위대한(?) 주세페의 식당 ‘파토리아 델레 토리’에 늘 괜찮은 점수를 줬다. 그래서인지 주세페는 <미슐랭 가이드>보다 <감베로 로소>를 더 좋아하고 신뢰했지만, 이미 대세는 <미슐랭 가이드>로 넘어가는 판이었다.

2008년 현재의 이탈리아는 <미슐랭 가이드>가 더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고급 식당에 와서 돈을 쓰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외국인들이었고, 그들은 영어로 된 이탈리아판 <미슐랭 가이드>를 표준으로 삼는다. <감베로 로소>가 뭐야? 그래서 전통식당이 아니라면, 대도시의 고급 식당들은 <미슐랭 가이드>의 평가를 더 내세운다. 설사 <미슐랭 가이드>의 평가가 더 낮더라도 그렇다. 예를 들어 <미슐랭 가이드>에서는 별 둘이고 <감베로 로소>에서 포크 세 개(최고 등급)라고 하더라도 그들은 별 둘이라는 사실을 더 밝히고 싶어한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자기 식당이 파리의 별 둘짜리 식당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주세페로선 맥도널드가 아닌 <미슐랭 가이드> 스리스타 레스토랑 앞에서 시위를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박찬일 요리

Posted by 이탈리아에 사는 다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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