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시가 있는데 안경을 쓸 정도는 아니라, 운전할 때 말고는 세상이란 원래 이렇게 흐릿하려니 하고 살아왔다. 그게 벌써 20여년이 되어간다. 게다가 안면인식 장애가 있어서 코 옆에 큰 점이 있다거나 콧구멍이 하트라던가 하는 명학한 특징이 없으면, 사람을 한두번 봐서 기억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이렇게 어쩌다, 이탈리아에 흘러 왔는데 외국 사람들을 보니 죄다 비슷비슷해보여서 더 헤깔리는 거다. 먼 옛날 구름씨를 비행기에서 처음 만나고, 한 한 달 정도 후에 서울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그 얼굴이 도무지 기억나지 않아서 사실, 다시 만났을 때 못알아보면 어떻게하지 걱정을 했었다. 비행기에서 10시간이나 이야기를 했었잖아! 어느날 아리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아리는 -야, 그건 니가 그냥 사람들한테 관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