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내가 사는 작은 이탈리아 마을

배짱에 관하여.

이탈리아 다람 2012. 10. 13.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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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짱에 관하여.





스테판 사그마이스터는 그래픽 아티스트로 소개된다.

나는 그의 전시회에 다녀온 후

단순한 그래픽 아티스트라기보다는 전방위적 현대 예술가인 그만의 철학이 있는 작품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2004 Seoul)


having / guts / alwaya / works / out / for / me
나에겐 / 언제나 / 배짱을 / 가지는 것이 / 잘 / 통한다

-Stefan Sagmeister





그의 작품 중 하나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나는 '배짱'이라는 것에 대해 긴 시간동안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배짱부리는 방법을 모른다.

배짱이 뭔지 잘 모른다.





배짱부리는 부모나 선배를 본 적도 없고, 배짱을 교육받은 적도 없다. 

배짱을 경험한 적이 없다.


배짱은 왠지 힘있는 소수만이 누리는 호사같다.





스테판이 한국에서 평민으로 평범하게 자랐다면 

똥을/ 무서워서/ 피하나

라는 문구를 넣었을 것 같다.


배짱 없는 사람들이 자위하기 좋은 격조있는 문구다.




사회는

배짱 좋은 여자는 기 센 쌈닭으로

배짱 좋은 남자는 이해심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국 무기력해지기를 선택한다




어처구니 없는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우리는 가끔 논리적으로 무언가를 설명하려 노력하다가 얼굴이 빨개지고 언성이 높아지다가는

이내, 똥을 무서워서 피하나

라며 쿨하게? 우리의 권리와 존엄을 다 포기해버린다.

그런 행동을 미덕이라고 교육받았기 때문에.

그런 어른들을 보아왔기 때문에.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사실, 

이 사회에서 우리가 배짱을 부린다한들 잘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있다.


상대가 거대한 힘을 가졌다면, 

법과 경찰이 내 편이 되어주지 않을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비록 상대가 거대한 힘이 없더라도 

일단, 나보다 목소리가 크고 성격이 더러운 놈이라면

이 놈에게 해코지를 당해도

법과 경찰이 나를 보호해주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다.






결국,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 땅땅거리며 배짱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이란

같은 나라 국민처럼 보이지만 그들만의 천국같은 세상에서 특권의식에 쩔어있는 힘있는 자들 또는

흉악한 범죄자의 인권을 으뜸으로 보장해주는 살기좋은 우리나라의 그깟 처벌 따위는 코웃음 쳐버리는 더러운 무리들뿐.





우리는 참으로 교육을 잘 받은 국민이다.

참으로 말을 잘 듣는 착한 국민이다.


반항도 하지 않고, 배짱도 부리지 않는다.

그래봤자 내 손해라는 걸 아는 똑똑한 국민이다.




미국에도 일본에도 심지어 중국에도 배짱을 부리지 않는다.

참 친절한 이웃이다.



때때로 우리는 겸손과 비굴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것 같다.



유럽에서는 모두가 배짱을 부린다.

가난한 사람도 부자도

정치인도 부랑자도 

모두가 배짱을 부린다.


친구에게도 배짱을 부리고, 외국인에게도 배짱을 부린다.

자기 자신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눈빛으로.






배짱을 부리자.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배짱을 부려도 별 탈 없는 세상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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